해방 직후인 1946년 3월 23일 제정 공포된 군정청 행정 명령에 따라 설치된 국사관에서 출발한 국사편찬위원회는 대한민국 유일의 국립 사료 편찬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에 명시되어 있듯이 국사편찬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체계를 정립함에 필요한 각종 사료의 조사・수집・보존・편찬”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따라서 출발 당시부터 한국사 연구의 근간이 되는 사료의 조사와 수집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초기의 사료 수집은 국내에 산재한 자료를 수집하는 데 집중되었고, 국외 소재 한국사 자료로 눈을 돌린 것은 1976년부터였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1976년부터 매년 약 2회씩 국외 출장을 통해 국외 소재 한국사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였다. 1987년부터는 이 업무를 전담하는 담당자를 배치하였고, 국외 사료 조사 위원을 위촉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국외 소재 한국사 자료의 소재를 파악해 나갔다. 1993년부터는 근현대 사실에서 현대사 관련 자료집을 간행하면서 간행 업무담당자도 국외 소재 한국사 자료를 수집하였고, 1998년부터는 근대사 관련 자료집을 간행하면서 국외 소재 한국사 자료 수집이 다양화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 내부에서 국외 자료를 수집하는 채널이 다변화됨에 따라 내부적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사료 조사실에서는 일반 수집을, 근현대 사실에서는 간행을 위한 목적 수집을 담당하는 것으로 하였다. 이러한 사료 수집 활동 결과 국외 소재 한국사 자료 수집 사업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1999년 말에 국사편찬위원회는 문서 347,474장, 도서 1,193 책, 마이크로필름 1,575 릴, 사진・지도・비디오테이프 등 기타 자료 77건 358종을 보유하게 되었다.
2001년 시작된 “해외 소재 한국사 자료 수집・이전 사업”은 국외 소재 한국사 자료를 수집, 이전하는 일에 있어서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사업을 위해 2001년부터 5년간 총 100억을 투입하기로 하였다. 2000년도에 이 사업에 배정된 예산이 1억 8천 만 원이었음을 감안한다면 2001년부터 시작된 “해외 소재 한국사 자료 수집・이전 사업”은 일단 규모 면에서 획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 첫 해인 2001년에는 10억 원의 예산이 투여되었고, 그다음 해부터는 0억 원으로 늘어났다. 불과 1년 사이에 예산이 5.6배나 늘어났고, 그 음 해에는 그 전년도에 비해 2배나 늘어났다.
예산의 증가에 따라 국외 소재 한국사 자료의 수집 성과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2001년에는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 중국에서 문서 209,098장, 마이크로필름 225릴, 도서 45 책, 사진 71점, 카세트테이프 682개를 수집했다.
그 이듬해에는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 중국에서문서 929,137장, 마이크로필름 586 릴, 도서 234 책, CD 22장, 그림엽서 사본 1,228점, 사진첩 46권을 각각 수집했다. 정부는 사업의 마지막 해인 2005년부터 연간 예산 규모를 10억으로 조정하는 대신 5개년 사업을 계속 사업으로 전환하였다. 여전히 수집해야 할 자료가 국외에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현재도 사료 조사실의 주요 업무로 계속 수행되고 있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이 사업의 성과로 수집된 국외 소재 한국사 자료는 문서 복사본 6,679,906장(이미지 파일 포함), 마이크로필름 3,945컷, 4,258릴, 마이크로 피시 1,018,027컷, CD/DVD 1,070장, 도서 19,228 책, 사진(사본 포함) 11,326장, 카세트 및 비디오테이프 726개, 슬라이드 12,277매, 그림・지도・글씨 등 474점, 기타 1,561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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