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학 사료편찬소의 역사자료 연구자 원화
1901년에 편년[『大日本史料』]과 유찬[『大日本古文書』]이라는 상이한 성격의 사료집이 최초로 간행된 이래 사료집은 사료편찬 소가 소장한 역사자료・역사정보를 연구자원으로 공유화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며, 지금도 그 시리즈는 계속 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사료편찬 소에서 행하는 역사자료의 조사와 복제 작성에 의한 사료 수집은 처음부터 도쿄대학 사료편찬 소가 간행하는 사료집의 편찬・이용을 목적으로 했던 것이었으며, 수집한 사료 자체를 있는 그대로의 형태로 연구에 이용하는 방식은 원칙적으로는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쿄대학 사료편찬 소가 가진 복제사료를 직접 열람하고 연구에 이용하고 싶다는 연구자들의 요청이 강했고, 처음에는 비공식적으로 시작한 사료편찬소 내부에서의 사료 열람이 1970년대에는 정식으로 열람실을 설치하고, 그곳에 직원도 배치하는 형태로 정비되었습니다. 도쿄대학 사료편찬소 열람실에서 복제사료・원본사료를 열람하는 것은지금까지도 사료편찬소가 행하는 사료정보의 공유화, 즉 사료 공개로서는 중요한 일이며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료편찬 소에서 열람에 제공하는 복제 사료의 작성 자체가 지금의 입장에서 자리매김하자면 연구자원으로서의 역사자료 공유화 그 자체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본을 일시 차용하여 등사(이른바 보통의 사본을 작성하는 베끼는 방식)와 影写(원본의 형상 자체를 敷写하는 방식;역주-서화 따위 위에 종이를 깔고 모사하는 방식)라는 전통적인 書写 기술로 복제 사료를 작성하고 사료정보를 수집하는 사업은 1880년대부터 조직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19세기 말 당시에는 최신 기술이던 사진을 이용한 사료 복제도 매우 이른 시기에 개시하였습니다.
이 사진 기술은 그 후 크게 발전하여 유리건판 사진에서 은염 사진, 디지털 사진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고, 이에 수반하여 사료편찬 소의 사료 복제 형태도 변화를 거듭하였습니다.
사료 공개의 형태도 당초의 사본・등사본・영사본과 台紙付 사진이라는 형태로 대량의 사진첩이 추가되었습니다. 현재 사료편찬 소는 원본 20여만점 외에 도쿄대학 사료편찬소 작성(복제) 사료로서 11만책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속에는 영사본 7,000책, 등사본 23,000책, 사진첩 4,500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 정보처리 기술 역시 급속한 발전을 보임에 따라 지금까지 서적 형태의 사료집만으로 역사정보 공유화를 시도해 왔던 체제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료편찬이라는 연구활동 속에서 축적된 역사정보・사료정보에 관하여 데이터베이스라는 형태로도 광범위하게 제공하려는 시도가 1980년대에 시작된 것입니다. 1993년에 전산장비 도입 예산이 인정되면서 사료편찬소 내부 네트워크가 실현되었고, 다시 1997년에는 웹사이트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사료편찬 소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사료편찬 소가 보유한 역사정보・사료정보를 세계적인 규모로 공유화하는 기초 조건이 실현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문자 데이터에 의한 목록정보 등 역사정보・사료정보가 중심이었습니다만, 여기에 전문 정보가 추기되고, 이윽고 디지털화된 사료 화상・사료집 판면 화상 등 화상데이터를 문자데이터에 연동시켜 연구자원으로 공유화하려는 움직임이 추진되었습니다.
지난번 본 협의회가 개최되었던 2006년 단계에서 이러한 방향성은 이미 확정적인 것이 되었으며, 열람실이라는 물리적・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은 인터넷이라는 수단에 의하여 동아시아 규모에서의 사료 공유화가 실현 가능하다는 전망이 널리 인식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하에서 2006년 이후에 관하여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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