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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정보

조선의 기록열과 일기류 기록자료

by 쥬이대디 2020.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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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적 이념에 의해 건립된 조선은 그야말로 기록의 나라였다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특정 사안을 공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하려는 유학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왕의 모든 일상들을 기록하고, 왕의 승하 이후 그것을 편집해서 실록으로 만든 『조선왕조실록』은 이와 같은 유학의 기록 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이다. 이와 같은 조선의 기록 열은 또한 방대한 분량의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일성록』과 같은 기록자료를 남기기도 했다.

이와 같은 국가적 열정은 국가 시스템 속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문화로도 정착되었다. 조선시대 선비라면 누구나 사후 자신의 시문집이 출간되기를 원했으며, 한 가문의 품격을 문집의 유무로 판단하는 문화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문집 출간에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출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기록 열은 특히 그들이 남긴 일기류 기록자료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중앙정부의 기록은 정부를 운영하는 시스템의 일종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민간의 일기류 기록자료는 기록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열정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들이 남길 수 있는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기록하였고, 그것은 방대한 민간 일기류 자료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은 일기류 기록들을 큰 틀에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기는 우선 공동체 관련 일기와 개인의 일기로 나눌 수 있다. 공동체 관련 일기는 서원이나 향교를 세우고 짓는 과정을 기록한 ‘영건・영당 일기’나 상소를 올리기 위해 설치한 소청의 전말을 기록한 ‘소청・변무 일기’ 등을 들 수 있다. 봉강서원 건립 당시의 전말과 투입 예산 및 건립 절차 등을 기록한 『鳳岡影堂營建日記』나 영남만인소를 올리는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한 『闡揮錄』 등이 대표적이다. 또 묘소나 묘비 관련 일기 및 문집 발간 관련 일기들도 공동체 관련 일기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퇴계집』 개간 당시 전말을 기록한 『先生文集改刊日記』 등을 들 수 있겠다.

이에 비해 개인일기는 개인의 사적 생활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 내용은 다양하여 분류 자체가 쉽지 않다. 우선 지방관이나 관직 생활을 하면서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사환 일기’를 들 수 있으며, 선비들의 유배 전말과 당시 상황을 기록한 ‘유배 일기’도 있다. 경상감사를 지냈던 조재호가 쓴 『嶺營日記』나 광주에서의 유배생활을 기록한 『公山日記』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류성룡의 셋째 아들이 청량산을 유람하면서 쓴『遊淸凉山日錄』과 같은 ‘여행일기’도 있고, 『황화 일기』와 같이 사행을 다녀오면서 기록한 ‘사행 일기’도 있다. 더불어 독서나 강학하면서 쓴 독서・강학 일기들도 있다.

특히 개인일기를 통해 그들의 기록 열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전쟁이 나 피난 같은 상황에서 기록한 ‘전쟁・피난・의병 일기’ 들이다. 이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매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조선시대판 안네의 일기라고 할 수 있는 『龍蛇日記』나 이인좌의 난에 안동지역에서 의병 일으킨 것을 기록한 『倡義錄』 등이 대표적이다. 더불어 기록 열을 보여 주는 일기류 가운데 하나가 바로 ‘考終錄’이다. 이것은 부친이나 스승의 임종과정이나 장례 등의 전말을 기록한 것으로, 특히 향산 이만도가 일제 강점 후 단식 자결하는 모습을 스스로 기록한 『靑邱日記』는 대할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 외에도 일상적인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기록한 ‘생활일기’들이 있다. 이러한 일기들은 오랜 기간에 걸친 개인의 기록으로, 계암 김령이 쓴 39년간의 기록인 『계암일록』이나 김두흠, 김병황, 김정섭이 3대에 걸쳐 기록한 『三代日記』 등이 있다.

이처럼 일기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상황들에 대한 세밀한 기록이다. 이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 상황이나 전투의 전말을 일기로 기록했으며, 사행단에는 서장관이라는 관리를 파견해서 사행일기를 쓰게 했다. 가까운 이의 죽음도 감정을 누른 채 담담하게 기록했으며, 심지어 유배를 가서도 매일을 기록했다. 어떤 일이 진행되면 반드시 일기 쓸 사람을 선임했고, 분쟁이 붙어도 양쪽에서 모두 그 사안들을 기록했다. 기록이 개입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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